설메아리의 무릎 위 겉옷에서 이음이가 잠들고, 옆에 선 세상빛이 웃음을 참고 있다.
에피소드

시즌 1 · 5화

거긴 내 자리인데

연습을 기다리며 벤치에 펼쳐 둔 메아리의 겉옷을 이음이가 먼저 차지했다.

공연장 뒤 벤치에 겉옷을 펴 놓고, 나는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고개를 드니 이음이가 내 옷 위에 앉아 있었다.

“거긴 내 자리인데.”

언니가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다 말고 나를 봤다.

“아직 앉지도 않았잖아.”

“옷 놓으면 맡은 거지.”

“얘도 그렇게 생각했나 보네.”

이음이는 앞발을 가지런히 모았다. 내가 쳐다보자 고개만 반대쪽으로 돌렸다.

나는 벤치의 빈 곳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음아. 여기.”

귀 하나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몸은 그대로였다.

벤치에 펼친 겉옷 위의 이음이에게 설메아리가 빈자리를 권하고, 세상빛이 수첩을 들고 지켜본다.

“들었지?”

“응.” 하고 언니가 말했다.

“그럼 좀 와 봐.”

이음이가 하품했다. 머리 위의 초록 잎이 뒤늦게 흔들렸다.

언니는 벤치 끝에 손을 대 봤다.

“여기가 더 따뜻한데.”

나는 햇볕이 드는 쪽에 손바닥을 펴 놓았다. 이음이는 그 손을 잠깐 보고 겉옷에 턱을 얹었다.

“햇볕 때문은 아닌가 봐.”

“내 옷이 좋은 거야.”

“그럼 옷은 두고 옆에 앉아.”

“나중에 입어야 되잖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귀 한쪽만 기울인 이음이.

언니가 웃으며 벤치 끝의 가방을 바닥으로 내려 줬다. 나는 그 자리에 걸터앉았다. 내 겉옷은 이음이 밑에 넓게 깔려 있었다.

이음이가 앞발을 뻗었다. 나는 소매가 구겨지는 걸 보고도 손을 뻗지 못했다.

“아, 저렇게 자면 못 깨우는데.”

“벌써 못 깨워?”

“자는 걸 깨울 순 없잖아.”

“아직 안 자.”

이음이는 눈을 뜬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언니는 수첩으로 입을 가렸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지난번에 언니에게 들려줬던 후렴을 작게 흥얼거렸다. 끝을 조금 바꿔 부르다가 멈췄다.

이음이가 고개를 들었다.

“얘 내 노래 듣나 봐.”

언니가 내 발을 내려다봤다.

“네 발이 벤치를 치고 있잖아.”

나는 발뒤꿈치를 바닥에 붙였다. 이음이는 다시 턱을 내려놓았다.

잠깐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음이가 일어선 건 언니가 다음 연습 시간을 확인하고 수첩을 덮을 때였다. 등을 쭉 늘이고, 앞발을 내밀고, 뒷발까지 하나씩 뻗었다.

나는 이음이가 비켜난 걸 확인하고 천천히 겉옷을 집었다. 옷을 반으로 접어 무릎에 올렸다. 그제야 벤치에 제대로 앉을 수 있었다.

“됐다.”

이음이는 벤치 위에 서서 내 무릎을 봤다.

나는 고양이를 보고, 무릎 위의 겉옷을 봤다.

“설마.”

앞발 두 개가 먼저 올라왔다. 곧 뒷발도 따라왔다. 이음이는 접힌 옷 위를 한 바퀴 돌더니 몸을 둥글게 말고 눈을 감았다.

나는 양손을 무릎 양옆에 짚었다.

“언니.”

“왜.”

“나 이제 어떻게 일어나?”

“아까는 앉을 데가 없다며.”

웃음이 나서 무릎이 조금 움직였다. 이음이가 눈을 뜨자 나는 얼른 가만히 있었다.

엎드린 채 한쪽 눈만 뜬 이음이.

“거긴 진짜 내 자리야.”

이음이는 꼬리를 제 앞발 옆으로 당겼다. 눈은 다시 감겼다.

언니가 가방을 집어 들었다.

“들어갈까?”

나는 무릎 위를 내려다봤다. 접힌 겉옷 가장자리로 흰 털이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오 분만.”

언니는 수첩을 가방에 넣고 내 옆에 앉았다.

이음이를 무릎에 둔 설메아리와 세상빛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기다린다.